두잇리뷰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5월 6일 급성대동맥박리 라는 병명으로 작고 했다는 소식 입니다.


급성 대동맥박리
대동맥 박리를 유발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는 고혈압, 환자의 70~90%에서 고혈압이 동반되며 대동맥의 내막이 찢어지는 질환으로, 혈액이 지나는 원래 통로와 찢어지면서 생긴 가짜 통로가 대동맥에 생기게 되고, 원래 통로를 압박하는가 하면 강한 압력으로 인해 혈관이 부풀어 오르거나 쉽게 파열되기도 한다.

약 30~40% 환자가 발생 직후 현장에서 사망, 상행 대동맥을 침범한 경우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응급 수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2일 이내에 50%, 생존 이후 한 달 이내에 90% 이상이 사망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질환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 서거 브로드


베르세르크 의 작자 인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이 2021 년 5 월 6 일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인해 서거되었습니다.
미우라 선생님의 업적에 최대의 경의와 감사를 나타냅니다 함께 진심으로 명복을 기원드립니다.
2021 년 5 월 20 일 주식회사 하쿠센 샤 영 애니멀 편집부

급성 대동맥 박리로 인하여 사망. 향년 54세.



미누라 켄타로 작가가 1992년부터 거의 인생을 바쳐온 만화
베르세르크, 휴재도 작업량때문에 생긴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요. 잠깐 다른 휴식기 만화를 그렸을때 빼고는 베르세르크에만 올인해왔습니다. 작화나 배경도 미우라 켄타로가 대부분 다 직접 작업 한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시들은 두루안키라고 하는 미우라켄타로가 프로듀스하는 작품을 그리며, 합격점을 받으면 베르세르크에 투입할 예정이었다고 하는데요. 그정도로 만화가로서의 삶과 애정이 다 들어있는 작품이였는데 더이상 못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네요.




베르세르크 줄거리

워낙 장대한 세계관과 내용 때문에 스토리 설명이 어려워서 보통 작화 위주로 많이 올라오지만 미우라 켄타로의 대표작 베르세르크는 작화만큼 무지막지한 연출과 스토리를 자랑하는 만화입니다.




그 스토리를 짧게 요약하면 가혹한 운명에 맞서 싸우는 가츠의 처절한 사투 정도로 정리할수 있는데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혹한과 처절함.

가츠가 맞이한 운명은 정말이지 가혹하고 그에 맞서싸우는 가츠의 사투는 정말이지 처절하기 때문에 가츠는 만화 좀 봤다 하는 덕후들 사이에서는 만화 역사상 가장 불쌍한 주인공이라는 소리를 듣는 주인공 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죽는게 행복하지 않겠냐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절하게 구르고, 구르고, 구르면서도 계속해서 맞서 싸우는 주인공 가츠. 이렇게 처절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가츠의 행복한 삶을 바라는 팬들이 정말 많았었는데요.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사망으로 더이상 가츠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알 수 없게 되었는데요. 가츠의 해피엔딩을 볼 수 없게 됐지만 가츠가 종국에는 행복해졌다고 굳게 믿습니다. 더이상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엄청난 작화와 연출, 스토리로 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다는게 정말 아쉽네요.

명언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작가 후기로 보는 미우라 켄타로(베르세르크 작가)의 인생



1993년 14호
7월로 27살. 되돌아보면 만화로 점철된 27년. 이대로 괜찮은가?


2000년 1호
게임샵에서 베르세르크 체험판에 열중중인 소년이! 그 뒤에 도키메키메모리얼2를 들고 있는 내가! 잉여인간이거든.


2001년 10호
만화가 경력 13년, 처음으로 1주일 가량의 휴식. 쿠메지마에 다이빙 면허를 따러 간다. 친구들은 바쁘고, 여친도 없으니 혼자 간다.


2001년 24호
1개월 반동안 외출한 건 조나단에 밥먹으러 갔던 2시간 뿐. 쁘띠 히키코모리?


2002년 7호
오랫동안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니 입이 잘 안 돌아간다.


2002년 21호
2년동안 걸려온 전화 0. 휴대폰 해지하자. 막장상태의 인간관계는 날 책상에 앉게 하는 원동력.


2004년 11호
처음으로 작업장과 침실 이외의 공간이 있는 집으로 이사간다.


2004년 12호
정신 차리고 보면 하루 삼시세끼를 칼로리메이트. 몸은 건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위험할지도? 이사하면 조금이라도 밥을 지어먹자.


2004년 23호
내 휴식은 2개월에 반나절. 벌써 4년이나 2일 연속으로 쉰 적이 없다. 슬슬 여기저기 쑤시기 시작한다.


2005년 9호
과로로 또 쓰러졌다. 구인사가 이벤트 가고 싶어졌다. 우에~엥!


2006년 2호
30대도 얼마 안 남았다. 만화 이외엔 아무 것도 없는 일그러진 인생은 이제 되돌릴 방법이 없으므로 이대로 GO!


2006년 3호
올해도 방콕이다~~!!


2006년 8호
드디어 30권. 처음엔 2, 3권으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2006년 13호
최근 원고가 자주 늦어지고 있다. 40살에 가까워지니 체력이 떨어진 듯.


2006년 18호
1화에 가볍게 1000명 이상 그리기. 앞으로 한동안은 부정기연재가 됩니다만,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눈물)


2007년 3호

휴재한 동안에도 계속 군대 그리고 있었습니다.


2021년 5월 6일 급성 대동막 박리로 사망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 사망 소식 보니까 옛날에 베르세르크의 연재 후기 보면서 젊을 때부터 너무 몸을 혹사하는데 싶긴 했는데 이런 것들이 쌓여서 일찍 가신 게 아닌가 안타깝습니다.



베르세르크 작가 추모하는 더파이팅 작가

사진은 미우라 켄타로군이 그려준 타카무라입니다.

부고소식을 듣고 지금 많이 감정적인 상태에요. 추억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제가 만화를 처음으로 시작 할 때 스태프가 한 명도 없어서 곤란해하고 있었을 때 그가 저를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는 열 여덟살이고 저는 열 아홉살이었어요.

모 대학 예술학부 학생이었던 그는 강의가 끝나고 한 손에 스케치북을 든 채 찾아왔습니다.

그가 그림을 얼마나 그릴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저는 제 그림을 보여준 뒤 이걸 따라서 그려보라고 말했습니다. 완성된 그림을 본 후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나이에 맞지 않은 그림이었습니다.몇 점을 더 그려달라고 한 뒤에, 나는 이미 그에게 빠져버렸습니다.

아직 젊었던 우리들은 이내 그림을 멈추고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그가 들고 온 스케치북이 궁금해져서 그 안을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간담이 서늘하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거기에는 요정이, 낙인이, 커다란 검을 든 그림자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굵은 선의 연필로 그려진 그것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이게 뭐야?라는 질문에 그는 머리 속에 있는 것들입니다. 실력을 키워서 그리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언제부터 시작된건지. 이미 거기에는 베르세르크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저의 첫 작품이 연재되기 시작했고 그와 거의 비슷하게 베르세르크가 발표됩니다. 그와 관련해서 고생을 좀 했다는 얘기도 좀 들었었지만 저는 확신하고 있었어요.
무조건 대박 날 만화가 시작된거라고.

그 겐타로군이 스스로 충분한 실력을 키웠다고 판단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작한 연재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지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은 혼신의 장면들.
존경한다는 말 밖에 꺼낼 말이 없었습니다.

추억담은 이걸로 끝냅니다.
그와 만난 것은 그 때 뿐이었지만 이후에도 저에 대해서 신경써주셨던 걸로 알고있습니다. 저도 그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멋대로 지껄여대서 미안하다 켄타로
나중에 마지막 회 읽으러 갈게




그리드형(광고전용)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